일본 리포트

일본 지방창생의 교훈

2021-06-30 10:34
정윤성 기자의 일본이야기 <지방창생>

안녕하세요. JTV 전주방송 정윤성 기자입니다.
저는 지금 일본 게이오대학교에서 지방 창생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 "지방을 창조적으로 활성화하자"
'지방 창생 (地方創生)' 이 뭐냐고요?
2014년 일본에서 이른바 '마쓰다 리포트'라는 게 발표됐습니다. 2040년까지 900여 개의 지자체가 인구감소로 없어진다는 거죠.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러자 일본 정부가 들고 나온 카드가 '지방 창생'입니다.
지방을 창조적으로 활성화시키겠다는 뜻입니다.
국내에서도 '지방 소멸' 문제가 지역의 중요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죠.
지방창생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 추억·겉모습은 그대로, 소득·교류는 UP!

자세한 내용은 천천히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먼저, 일본에서 지역 활성화 사례로 주목받는 곳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하마에서 도쿄 아쿠아라인을 타고 바다를 건너면 치바 (千葉) 현의 관문, 키사라즈 (木更津) 시에 들어섭니다.
여기서 기차를 타고 다시 한 시간을 가면 호타(保田) 역에 도착.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는 무인역입니다.
인구가 아주 적은 시골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죠.

# 일본 도시민 교류시설

이곳에는 126년 역사를 가진 호타(保田)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폐교입니다.
학생 수가 감소해서 2014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이 학교가 있는 쿄난마치 (鋸南町)는 인구 7천여 명의 미니 지자체입니다. 이런 곳에서 초등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지역이 휘청거릴 정도로 충격이었을 겁니다.
자치단체는 폐교를 활용해서 뭔가 지역을 살릴 수 있는 사업을 물색했습니다.
주민들도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민들이 감당하지도 못할 사업을 요구하진 않았습니다.
공청회에서 주민들은 하나같이 추억이 담긴 학교 건물을 최대한 살리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지자체로서도 자신 있게 추진할만한 사업도 없었고 주민들의 의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 일본 호타 초등학교

2015년 학교 이름을 딴 '호타 초등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름은 초등학교지만 내용은 도시민 교류 시설입니다.
밖에서 보면 말 그대로 초등학교입니다.
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1층에는 라면집, 피자가게, 커피가게, 아이 놀이방, 2층에는 숙박시설, 목욕탕이 들어섰습니다.
숙박시설과 목욕탕에 대해서는 배경 설명을 드려야겠네요.
이 시설 운영자는 호타 초등학교 주변의 석양이 굉장히 멋있는데 방문객들이 모두 당일치기로 돌아가는 게 아까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방문객들이 묵고 갈 수 있도록 교실을 숙박시설로 개조했고,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목욕탕까지 만들었다는 설명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목욕을 좋아하니까 학교 건물 2층, 어디서나 보이는 공간에 대중목욕탕을 만들어서 숙박객을 유치한다는 겁니다.
학생들이 뛰어놀던 강당은 판매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250여 지역 농민들과 30개 지역 제조업체가 농산물과 제품을 출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학교 출신의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농산물을 출하하러 나온 마쓰가와 에쓰코 씨였는데 "농산물 판매 공간으로 바뀌긴 했지만 초등학교의 옛 모습이 남아있어서 좋다" 라고 말하더군요.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모교가 없어지는 것보다는 그래도 그 형태가 남아있다면 다시 찾아갈 이유가 될 수 있는 거니까요.
이 시설의 연간 방문객은 60만 명, 연 매출 6억 엔을 기록했습니다.
2015년 문을 연 뒤, 보조금 없이 흑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호타 초등학교의 콘셉트는 한마디로 '추억'입니다.
학교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서 방문객들이 추억의 공간으로 산책 나가는 기분을 느끼도록 설계돼있습니다.
건물 설계 공모에는 37개 팀이 참여해서 최종적으로 와세다大, 호우세이大, 요코하마국립大 등 5개 대학 연합팀이 설계를 맡았습니다.


# 교실을 개조해 만든 숙박시설

전체 공사비는 12억 5천만 엔, 모두 정부와 지자체가 부담했습니다.
호텔과 기숙사를 운영하는 업체가 이 시설을 관리하고 있는데 이 학교 건물의 리모델링 공사 단계부터 참여했다고 합니다.
건물을 위탁 운영할 주체가 공사 단계부터 참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공사를 본인들의 사업 계획에 맞출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시공을 막을 수 있고 건물의 활용도를 그만큼 높일 수 있습니다.
시설의 운영책임자 오츠카 카츠야 씨는 "초등학교의 모습을 살려 특화 시켜 차별화시킨 것이 지속적으로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는 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하더군요.
사실 오츠카 씨는 수익 개념에 아주 밝은 사람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부분의 에피소드를 여러분과 공유하겠습니다.

# 숙박객을 위한 대중목욕탕


■ '지방 소멸의 상징'에서 '지역 재생의 모델'로
시골의 폐교는 인구감소, 지방 소멸의 상징처럼 여겨져왔습니다.
하지만 호타 초등학교는 지역의 재생 모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일본 내각부가 지방 창생의 선진모델로 소개하는 곳입니다.
관광객들은 추억을 찾아서 오지만 거기서 소득이 나오고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이 지방이 활성화하는 길입니다.
일본 정부가 이곳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겁니다.
지역 활성화에 관심 있는 분들께 강추합니다.
앞으로 이 자리에서 지방 소멸, 지역 활성화, 일본 사회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하는 시간 가져보려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정윤성 기자, JTV전주방송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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