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리포트

외국인 백신접종 어떻게?

2021-06-30 10:35
주목받는 일본의 ‘직역’ (職域) 접종

“백신 맞았어요? 언제 맞으세요” 이제 지인들과 통화할 때 백신 이야기가 안부 인사가 됐습니다. 저는 오늘 백신을 맞았습니다. 모데르나입니다. 이제 막 백신을 맞고 돌아와서 써 내려가는 따끈따끈한 일본 백신 접종기 시작합니다.

지난 5월, 제가 사는 도쿄의 오타구청 (大田區)에 문의를 했습니다. 오타구에 등록돼있는 한국인인데 언제쯤 백신을 맞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담당자는 8월 중순부터 백신 접종권을 집으로 보내면 9월에는 백신 접종이 가능하겠다고 설명하더군요.

8월이건 9월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나 절차에서 내국인과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건 아닐까 은근히 걱정했던 게 사실입니다. ‘9월이라, 어쨌든 맞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일본 게이오대학)

앞당겨진 백신.....직장, 대학 통해 접종

그런데 백신 접종이 갑자기 빨라졌습니다. 이른바 ‘직역’ (職域)접종이라는 게 도입됐습니다. 일본의 직역 접종은 한마디로 정부, 지자체가 아닌 기업이나 대학이 소속 구성원들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 7일 NHK 저녁 뉴스에서는 대표적으로 게이오대학교가 직역 접종을 한다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교직원과 학생 등 5만여 명에게 백신을 접종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날 학교 측에 문의했더니 저 같은 방문연구원도 접종 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되면 구청에서 맞는 것보다 훨씬 일찍 백신을 맞을 수 있으니 잘 된 일이죠.


(# 일본 백신접종 예약 화면)


그렇게 해서 오늘 게이오대학에서 백신을 맞았습니다. 1주일 전에 대학의 백신 접종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서 예약을 하고 문진표를 출력해서 작성했습니다. 구청처럼 별도의 접종권 없이 인터넷 접수만으로 예약이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문진표, 접종 기록서, 신분증을 가지고 접종 현장 입구에서 줄을 섰습니다. 원래 저는 오후 3시 45분부터 4시 사이에 접종 절차를 밟도록 돼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나와있는 직원이 ‘일찍 와도 괜찮으니까 시간 되면 미리 줄을 서라’고 하더군요. 일본 공무원들은 답답하다 느낄 정도로 매뉴얼을 강조하는데 역시, 빡빡한 공무원보다는 민간 직원들이 융통성이 있습니다.
 
백신 접종에는 한국과 별 차이가 없을 겁니다. 다만, 인상적인 것은 접종이 이뤄진 후였습니다. 15분 동안 강당에 모아놓고 시간을 재더군요. 의자에 별도의 표시를 해놓고 강당에 들어온 순서대로 앉게 하고, 15분 동안 기다렸다가 신체에 이상이 없다고 하면 들어온 순서대로 내보내는 거죠.


(#일본 백신접종 기록서)


일본 백신 접종 성패는 ‘민간’ 접종

직역 접종을 하려는 기업이나 대학은 자체적으로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의료 인력,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게이오대학교에는 의과대학, 대학병원이 있기 때문에 직역 접종이 가능했습니다. 게이오대학은 방문연구원 뿐만 아니라 게이오대학의 업무를 위탁받아 처리하는 외부업체 직원들과 교직원들의 가족까지 접종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직역 접종이 나온 배경은 한마디로 도쿄 올림픽입니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백신 접종률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일본 정부가 민간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1일부터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직역 접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스가 총리는 11월까지 원하는 국민 모두가 접종을 마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아마 민간의 ‘직역’접종에 많은 기대를 거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코로나 시대, 지역의 자기결정 능력

코로나 시대에는 국민들이 원하는 백신을 원하는 시기에 접종해 줄 수 있는 능력이 그 나라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역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지역사회의 안전망도 그 지역의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지역에서는 ‘직역’접종을 통해 백신 접종이 이뤄지는데 우리 지역에는 의료 인력, 공간이 부족해서 접종에 차질을 빚는다면 그 지역은 차츰 주민들의 선택에서 멀어지게 될 겁니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다른 나라의 백신에 맡기는 상황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겠죠. 마찬가지로 지역의 안전을 중앙정부와 공무원에게만 맡겨서는 정말 중요한 순간에 발생하는 공백을 메우기 어렵습니다. 현장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공동체입니다.
 
지난 95년 일본 고베에서 대지진이 발생해서 6천 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이때 구조된 사람의 80퍼센트가 소방이나 경찰 같은 공적 조직이 아니라 지역 주민에 의해 구출됐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가장 먼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지역 주민입니다. 방재 (防災) 뿐만 아니라 방역 (防役)에서도 커뮤니티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중앙정부에 기대지 말고 지자체가 나서야 되고 공무원이 못하면 민간을 힘을 빌려서라도 그 지역의 안전을 지켜야 됩니다. 우리 지역의 삶을 우리가 지킬 수 있는 힘, 이것이 그 지역의 ‘자기결정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간의 독창성, 속도감, 융통성 등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은 지역의 안전과 지역의 활성화에 점점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일본에서 백신을 맞으면서 느낌 점이었습니다. 도쿄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정윤성 JTV전주방송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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