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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은 되고, 농민군 안되고...서훈도 '차별'

2023.05.31 20:30
동학농민군은
일제의 국권 침탈이 본격화하던
1894년, 2차 봉기를 일으켜
일제에 맞서 싸웁니다.

하지만 전봉준 장군 같은
최고 지도자들조차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 이유가 뭔지,
쟁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하원호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1894년 7월,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자
동학농민군은 2차 봉기를 일으켜
본격적인 항일 무장투쟁에 나섭니다.

CG IN
전봉준 장군의 법정 심문 기록인 공초에는 일본군이 경복궁을 습격한 사건을 계기로
의병을 규합해 일제와 싸웠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담겨 있습니다.
CG OUT

[하원호 기자 : 이 때문에 항일 무장투쟁에 나선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습니다.]

CG IN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그동안
1977년부터 5차례에 걸친 심사에서
전봉준과 손화중 같은
동학농민혁명의 최고 지도자들조차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CG OUT

CG IN
독립유공자법은
일제의 국권 침탈 전후부터
일제의 국권 침탈에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해 일제에 항거한 사람을
독립유공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CG IN

[트랜스]
문제는 일제의 국권 침탈이
언제 시작됐느냐는 건데,
국가보훈처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을미의병부터라는
1962년도의 심사 기준을
아직까지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윤영/동학혁명기념관장 : (1894년에 일제가) 조선 왕궁을 점령을 해 버려요. 고종을 포로로 잡고, 협박을 해서 조선 군대의 무장을 해제시켜버리고... 이게 얼마나 큰 국권 침탈입니까. 그런데 (보훈처가) 이걸 제외하고...]

[트랜스]
이 때문에 1895년, 을미의병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고,
이보다 1년 앞선 1894년
동학농민군의 항일무장투쟁은
독립운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국가보훈부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회에서도
이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김성주/국회의원 : 1895년은 인정하고, 1894년은 인정하지 않는 거, 이 모순을 이제 역사학계의 정설이 어디냐, 주류냐를 따지지 말고, 이제 보훈부가 책임 있게 나서서...]

[박민식/국가보훈부장관 후보자 : 이 상태로는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상당한 모순이 있다,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2차 봉기 참여자는 3천여 명,

이들을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에 포함하는 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된 가운데
동학혁명기념관도 최근
전봉준과 김개남, 손화중 등 세 명에 대한
서훈을 요청해 오는 9월 심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낡은 봉건 질서를 타파하고,
일제의 침략에 맞서 일어선
갑오년 농민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독립유공자 서훈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습니다.

JTV NEWS 하원호입니다. (JTV 전주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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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호 기자 (hawh@j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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