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리포트

정윤성 기자의 일본 리포트 (유바리시 재정파탄 15년 ②)

2021-08-06 09:58
유바리시 (夕張市) 재정파탄 15년 ②

 

무리한 도시재생 (再生)…재정 악화 초래

 

2004년 당시 유바리시 (夕張市)의 인구는 13,000여 명 수준이었습니다. 이처럼 작은 규모의 자치단체가 어떻게 60배가 넘는 빚을 지게 된 것일까요? 우선, 유바리시가 어떤 곳이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유바리 기간산업, 탄광 잇따라 문 닫아



(사진 설명: 일본 유바리시는 석탄산업을 기간산업으로 196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유바리시 (夕張市)는 원래 석탄산업을 기간산업으로 발전한 곳입니다. '탄광도시 유바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1960년에 유바리시의 인구는 11만 6천 명 규모로 최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에너지 정책이 석유 중심으로 바뀌면서 석탄산업은 급속하게 사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유바리에 있던 탄광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습니다. 유바리시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4개의 탄광이 폐산 (閉山)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진 설명: 일본 유바리시 석탄박물관) 


탄광이 문을 닫자 광부들은 유바리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5년 인구는 전성기의 9분의 1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당시, 인구감소율은 전국 도시 가운데 1위였습니다.

 

'탄광'에서 '관광'으로…하지만

 

홋카이도 지역 종합연구소 쓰지무라 마사노부 연구원은 유바리시 (夕張市)의 재정악화의 원인을 관광사업의 지방채 부담과 제3섹터의 운영 실패에서 찾습니다. 또, 인구감소에 따른 세입. 지방교부세의 감소, 공무원 인건비 억제 실패 등도 유바리시의 재정을 힘들게 했다고 분석합니다.

 

유바리시가 석탄산업을 대체할 '포스트 석탄산업'으로 들고 나온 카드가 바로 관광산업이었습니다.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이 필요했습니다. 유바리시는 그것이 관광산업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유바리시는 1980년 제3섹터 ㈜석탄역사촌관광을 설립해 '석탄의 역사촌,' 1983년에는 '석탄박물관' 등을 개장했습니다. 유바리시 상공회의소는 민간기업의 투자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바리시가 주체가 돼서 관광사업의 주요 시설을 건립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는 장기 침체에 들어갔습니다. 관광객들의 입장 수입은 기대를 밑돌았습니다. 입장료, 사용료 등의 수입으로 시설을 운영해야 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적자운영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바리시는 호텔, 스키장 등 관광시설에 대한 투자를 계속했습니다. 이런 투자는 유바리시 재정에 두고두고 큰 부담이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석탄역사촌관광은 74억 엔의 부채를 끌어안고 2006년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JTV전주방송 정윤성 기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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